블로그 이사 갑니다.

블로그를 이글루스에서 티스토리로 옮겼습니다. 뭐, 최근 이글루스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개편도 맘에 안든다 그런 게 약간 영향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예전부터 티스토리 블로그의 인터페이스가 더 맘에 들었었고, 여러모로 더 서비스도 괜찮은 것 같고 해서 언젠가 옮기고 싶다 싶었었는데, 우연찮게 초대장을 받게 되어서 전격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블로깅을 띄엄띄엄하게 해서 블로그를 한 지 얼마 안 된줄로 알았는데, 보니까 벌써 4년이 가까이 되어가네요. 가끔씩 와서 진지하게 읽고 좋은 멘트를 남겨주시는 분들도 많지는 않지만 계셨고, 그래서 후진 글이나마 쓰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계속 재미는 없지만 읽어보면 해롭지는 않을 글을 종종 혹은 가끔씩 올리겠습니다.

새 블로그 주소는, http://skytary.tistory.com 입니다.

현재 이글루스에 있는 글들을 정리할 생각은 없고, 그대로 놓은 채 새로운 글들은 티스토리에 쓸 예정입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제가 아이디로 '하늘타리'를 거의 15년째 인터넷 시작하면서부터 써왔고, 어느 서비스에서도 '하늘타리'라는 아이디는 거의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았는데, 이번 티스토리에 가입하면서 암초를 만났습니다. 벌써 '하늘타리'는 다른 분이 사용하고 계셔서 사용할 수 없다는 거였죠.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새 필명을 정했는데, '키릴로위'입니다. 그 의미가 뭐냐면, 그냥 간단히 '하늘타리'라는 식물의 학명이 Trichosanthes kirilowii인데, 여기서 뒷단어만 딴 것입니다. 뭐,' 하늘타리'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죠.

그럼 지금까지와는 달리 모두들 조금만 더 행복하시길.


대한민국 스케치 투덜이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본능이 자기 보존 본능과 종족 유지의 본능일 것이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을 달리는 초저출산과 자살률은 이 점에서 한국 사회가 어떤 임계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 아니라 이미 어떤 임계점을 넘어 버린 상태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지금 사람들이 몽땅 다 죽지 않고 있다고 사태가 심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린 이제 다 틀렸어'하며 다 같이 어딘가로 이민을 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사람들은 그러겠지만), 살 사람들은 그냥 최선을 다해서 살아낼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든 어떻게 되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이뤄지고 있는 개인들 간의 최선을 다한 경쟁도 아니고, 민족과 국가를 위한 개인들의 희생과 양보도 아니고, 존중 받는 권리를 지닌 개인들의 합리적인 연대일 것이다.

경쟁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경쟁이 부족해서 문제는 아니다. 상심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세요, 좋은 날이 올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나쁘지 않은 위로가 되겠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는 현실에 대한 왜곡 밖에 안될 수도 있다. 저출산의 이유가, 애를 안 낳는 이유가, 열심히 일해도 내 입에 풀칠하며 살기도 힘들어서인 사회에서는 그렇다. 덕담도 희망을 놓지 말고 우리 함께 바꿔봅시다가 되어야지, 계속 열심히 사세요가 될 수가 없는 상황.

이 단상은 명동의 카페 마리에서 "나도 이렇게 좆같이 살고 싶진 않아"라고 외치며 철거민을 때리는 용역 이야기를 듣고 참 비참한 곳이다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맞는 사람도 좆같고, 때리는 사람도 좆같고, 나 같이 구경하는 사람도 좆같다. 



평가 제도와 사교육 투덜이

'쉬운 수능 예고에' 입학사정관제 과열

지난 번 포스팅
에서 사교육 문제를 아주 간단한 게임 이론으로 한 번 풀어봤었는데, 그 핵심적 결론은 사교육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결과물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었다 (너무 당연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사교육이 (1)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뒤쳐지는 것을 방지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2)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앞서가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요 (1)과 (2)의 조합에 따라 그 사회의 사교육 빈도 혹은 인기도가 결정된다는 것.

사교육에는 언제나 비용이 든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위의 내용은 사교육 자체의 효과 (b)와 비용 (c)에 달려있는데, 기존 한국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은 b는 그대로 놓고 c만 높임으로써 사교육의 효용을 낮추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방향 자체가 틀린 건 아닌데, 지극히 효과가 낮지만 그저 하기 쉬운 제스쳐만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사교육 비용이 아무리 올라가도 사람들은 결코 사교육을 멈추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이상 사교육 비용만 규제하는 건 효과적인 정책일 수 없다. 게다가 이젠 더 이상 옛날 권위주의 시대때 처럼 사교육 비용을 직접적으로 규제할 능력도 정부가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바랄 수 있는 최대는 투명한 정보체계를 통해 사교육 시장 영역의 수입과 납세를 '정상화'시키는 정도. 물론 이것만도 만만치 않은 숙제일 것이다.

사교육을 줄이려는 최근의 또다른 정책 추세는 (딱히 최근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학 시험 혹은 선발 정책을 사교육이 따라잡기 어렵게 바꾸는 것이다. 옛날 학력고사 때는 어차피 반복과 암기가 주가 되는 일회적 시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식이었으므로 (내신도 있었지만 그 비중도 낮았고, 내신 자체도 학력고사식 시험들의 결과로 이뤄졌다) 사교육이 그 효과를 발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수능은 조금 다르길 바랬겠지만 (초창기 수능은 거의 아이큐 테스트에 가까울 정도였다), 사교육이 곧 그 경향을 따라잡았고, 수능 시험 자체도 점차 다시 단편적 지식을 물어보는 방향으로 바뀌어 왔다. 그 외 본고사, 구술면접 등등의 이런 저런 비표준화된 평가 방식이 다양하게 도입이 되고, 정부는 정부대로 대학들은 대학들대로 공공성 및 교육 평등에 대한 요구와 보다 능력있는 학생 선발 및 기득권 유지를 바라는 이런 저런 사회 세력들의 압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지만, 결론은 사교육은 늘 클라이언트들의 신뢰를 잃지 않는데 성공해 왔다. 아니, 잃지 않는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더 많은 신뢰를 얻어왔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옛날 학력고사, 수능 시대에 비하면 사교육의 효과성은 훨씬 낮을지 모른다. 당시 사교육의 인기와 신뢰는 실제 시험에서 검증된 그 효과에 기반을 둔 꽤나 과학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다원화되고 비표준화되고 그 결과 아무도 (부모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교육부도, 대학들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불확실성이 커져버린 입시 시험제도 도입의 결과는, 교육 당국이 바랬던 사교육 효과 감소로 인한 사교육 신뢰의 하락, 그리고 사교육 쇠퇴...가 아니라, 효과성을 떠나서 그나마의 유일한 신뢰성의 소스로 자리잡은 사교육의 위상 강화였다. 믿을 건 내 돈 주고 고용한 우리 과외 선생, 우리 학원원장 뿐인 거지. 어차피 국가의, 혹은 대학들의 호소와 수사 따위에 대한 신뢰는 대한민국에선 존재하지 않았다! 이젠 고딩들도 스펙경쟁을 해야되는 상황에서 사교육 기관들은 단순 학원이 아니라 컨설턴트로 진화해 온 것이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표준화된 시험은 점차 쉬워져왔다. 적어도 더 이상 사교육이 표준화된 시험 점수를 높이는데 예전만큼 큰 효과가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교육 당국의 정책적 지향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여전히 말이 많기는 하지만 학원 안가고 인터넷 강의만으로도 수능을 잘 볼 수 있게 한다는 당국의 지향도 그 자체로는 바람직한 것이다. 문제는 그 수능의 비중이 점점 더 줄어들어 왔다는데 있다. 더구나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따라서 점점 더 물량싸움이 되어가는 비표준 평가 영역의 진화는 쉬워지는 표준화된 시험에 대한 반작용 관계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점. 그 점에서 단순히 시험을 쉽게 만들어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정부 당국의 발상은 정작 중요하지만 어려운 부분은 안 건드리고, 쉬운 부분만 건드려서 뭘 해보겠다는 무책임하고 더 나가 결과적으로는 어리석은 것이었다 평가할 수 있다.

그럼 결론은 무엇인가?

사교육 - 교육의 결과 (대입) - 교육의 사회경제적 과실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에서 뒤의 링크는 그대로 둔 채 앞의 링크만 죽어라 만지작 거려봤자 죽은 아이 자지만지는 결과밖에 안된다는 것. 뒤의 링크를 조정해야 하는데, 이는 실질적인 대졸자와 고졸자, 엘리트 대 출신 대 비엘리트 대, 수도권 대학 대 지방대 등 교육과 관련된 노동시장 지위의 격차를 줄여야 함을 의미한다. 결국 구조적인 접근과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것. 이런 점에서 현재 내 시각은 상당히 비관적인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런 구조적인 링크를 건드리지 않고 비교적 쉬운 단기 정책적, 제도적 링크만 자꾸 건드리는 것은 오히려 전국민이 참여하는 스포츠인 사교육을 그야말로 검투사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고대 로마의 검투 경기로 만들 수 있다는 것. 반면 그짓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제스쳐로 보여진다는 점에서 늘 정치적으로 선호되고 악용되어 왔다는 점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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