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fficiency

경제사학자 더글라스 노스(Douglas North)의 [경제사 속의 구조와 변화](Structure and Change in Economic History)를 읽다보면 국가 형성과정에 있어서의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두 비슷하지만 중요한 지점에서 갈라지는 개념은 살다보면 아주 요긴하게 적용할 곳이 많은 쏠쏠한 녀석들이다.

일반적으로는 사람이나 국가나 모두 가급적 적은 자원을 투여해서 가급적 많은 소득을 얻기를 추구한다. 효율성이다. 하지만, 이건 소득의 총량과는 상관이 없다. 10을 투여해서 20을 얻는 것이 투입과 산출의 최적화를 이루는 지점이라면, 여기서부터는 투자를 더 해 더 많은 총소득을 얻더라도 효율성을 떨어지는 선택이 된다. 많이 투여해서 적게 얻게 되는 거니까. 효과성은 총산출량과 관련이 있다. 얼마를 쏟아붓든 최대한 얻는 것이 효과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100을 쏟아부어서 1을 더 얻는 짓은 무쟈게 비효율적이지만 효과는 있다. 투입을 해도 얻는 게 없게 되는 순간이 효과성이 0이 되는 지점이다.

국가가 전쟁을 하면 효율성은 쓸모 없는 개념이 된다. 100을 때려넣어 1을 더 건지더라도 이겨야 살아남는 상황에서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넌센스다. 10만명이 죽더라도 이겨야 국가가 살아남지, 효율성 따져 자원관리할 환경이 아닌 것이다. 전쟁을 통해 최적화된 국가구조가 확산된 근대 초기 유럽 시절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버틸 수 있는 절대적 자원의 한계가 있고, 버틸 수 있는 체력의 한계가 있다. 어느 지점부터는 합리적 수준의 효율성의 성취가 국가의 생존과 발전의 주요한 변수가 된다. 오늘만 살고 죽을 것도 아닌걸.

원래 이 생각은 계량경제 숙제를 제출하고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한심한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반성 그리고 낙엽과 가을 하늘, 시원한 바람이 주는 영감(?)의 합작으로 뭉게뭉게 피어났던 거다. 내일까지 내야하는 숙제가 있다면 그건 이미 전쟁의 상황이다. '데드라인'은 말그대로 사선이다. 생존의 상황에서는 몇시간을 투자하던 잠을 자던 못자던 일단 끝마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수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어쩌다 된 내 좌우명이 '꾸역꾸역'이듯 어찌되든 그역 꾸역꾸역 쏟아부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내는 그런 무식한 전략이 내 생존전략이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이게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비효율적일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최근의 하는 짓이란 비효율의 극치다. 영리하게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반드시 효과성을 포기하는 것은 또 아니다. 오히려 효율적으로 할 수록 더 많은 산출을 올릴 기회와 가능성이 높아진다. 계량경제 숙제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면 더 빨리 많은 문제를 풀수 있고, 다른 공부도 더 할 시간이 생긴다. 그게 아니면 하다못해 잠을 더 쳐잘 수 있다. 문제를 못풀어 이틀을 고민하다가 어처구니 없이 교재나 수업노트의 어느 곳에 너무 쉬운 해법이 떡하니 나와있는 경우나, 누구에게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그저 혼자 꿍꿍 앓으면서 풀지도 못하고 시간만 버리는 짓이나, 이런 짓을 하면 결국 어케 어케 해내긴 한다. 그리고 그렇게 끙끙거리며 보낸 시간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닐 거라는 희망고민 같은 자위가 남는다 (이거야 사실 성공한 사람들의 회고적 관점에서나 유효한 자가진단이지 그전에 소멸된 사람들은 리스크셋에 들어가지도 못한채 센서링되는 것뿐이다). 그리고 녹초가 된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by 하늘타리 | 2009/10/24 14:33 | 옹알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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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쎄스고 at 2009/10/27 10:59
요번껀 할 수 없고 다음부턴 효율적인 방법으로다가 해보자! 지식인에게 수학배우는 건 이제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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