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자장면, 논문, 미드 옹알이

1.

뉴욕에 다녀왔다.

링컨 센터 아이맥스 영화관에서의 아바타는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눈이 화면 (그 크기와 동시에 3D라는 이중고)을 감당할 수 없는 맨 앞 자리에서 보게 된 마당에, 연말에 계속 되었던 불규칙적 수면 사이클로 인해 초저녁 잠이 습관화가 된 덕에 그만 못 견디고 초반에 잠들고 말았다. 중반 이후부터는 깨어서 잘 봤다.

내용은 사실 별로 새로울 것 없는 (늑대와 춤을과 토씨하나 거의 다르지 않고 똑같다) 자기 성찰성을 가진 최소한의 건전한 미국 진보의 뻔하디 뻔한 로망을 보여주고 있는데, 보고나서 좀 웃겼던 것은 겨우 저 이야기를 위해 저런 가상의 세계, 가상의 종족, 가상의 언어까지 창조되어야 했을 이유가 있나, 저 이야기를 굳이 저 알 수 없는 미래의 알 수 없는 행성에 가서 해야하나, 파괴될 운명의 자연의 대조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저 이름과 조상도 알 수 없을 동물과 식물, 벌레들을 만들어내 이야기를 할 이유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깟 SF버전의 늑대와 춤을 이야기야 3D 그래픽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그릇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격하게 동의하고 그런 감독과 제작자의 의도에 전혀 딴지를 걸 이유도 없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저런 가상의 세계를 창조했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답이 안나온다. 그래픽으로 창조된 아바타 종족을 보여주기 위해서 결국 그 모든 것이 패키지로 따라 붙었다라는 설명밖에 안되는데, 저 굳이 필요없는 세계를 화면에 구현해 내기 위해 천문학적으로 수많은 금액의 돈과 자원을 쳐들였으리라 생각하면 저 늑대와 춤을의 SF버전의 이야기는 - 그 스토리에 어떤 깊은 의미를 두지 않더라도 - 그 결과적으로 가식적일 수 밖에 없음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거시다. 그런 의미에서는 차라리 트랜스포머가 훨씬 나을 수도 있다. 그냥 권선징악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순수한 기술적 혁신 자랑질의 결정체잖아.

아 물론 자연을 저토록 무시무시하게 파괴하는 장면들을 오로지 그래픽으로만 구현해 냈으니 친환경적이잖아요 라고 말한다면 그도 그렇네요 싶기도 하다.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사람 몇명 패고 죽이는 걸로는 부족해서 굳이 저런 엄청난 규모의 대량학살과 파괴가 필요하다면 말이다. 나야 뭐 그냥 사람 몇명 잔혹하게 패고 죽이는 것이 훨씬 스트레스 풀리는 쪽이라.

늑대와 춤을 이야기를 했지만, 스토리의 울림은 당연히 늑대와 춤을을 따라갈 수 없다. 오리지널의 어드밴티지도 있겠지만, 실재하지 않는 세계의 실재하지 않는 종족에 대한 동정과 공감, 실재하지 않는 파괴의 역사에 대한 죄책감과 분노보다는 실재했고 지금도 실재하는 사람들과 자연 그들의 역사에 대한 반추와 감동이 전자를 압도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일 거다.

영화는 재밌었고, 기꺼이 기회만 된다면 한번 더 보고싶은 정도이지만, 아직도 왜 아바타 종족이, 저 환상적으로 창조된 숲과 동식물들이 굳이 필요한 건지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안된다.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뭐지 이 개고생의 정체는? 이었다니까.

2.

유명한 35번가의 효동각에 가서 자장면을 먹었다. 면발이 쫄깃. 조건없는 별 다섯개 자장면이다. 2번은 먹고 왔어야 하는데, 1번만 겨우 먹고 온 것이 두고 두고 아쉽다. 짬뽕도 좋았다.

3.

뉴욕을 다녀오니 지도교수에게 메일이 와 있었다. 제출했던 페이퍼가 매우 맘에 들며 조금만 손을 보면 퍼블리쉬도 가능하겠다고. 개고생한 보람이 있다. 내 장점은 이런 개고생을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좀 무식하다는 거다. 이와 관련해 내가 기쁜 건 미리 완성도를 보인 덕분에 다음 학기에는 비교적 여유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은 거다.

4.

작년에 본 미드 중에 최고는 Rome이었다.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을 뿐 아니라 DVD도 소장하고 싶을 정도다. 최근엔 새로 Monk를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셜록 홈즈 수준의 천재적 수사 및 추리 재능과 함께 편집증과 결벽증 그리고 아내를 사고로 잃은 트라우마를 가진 탐정 애드리안 몽크의 사건일지를 다룬 작품이다. 1주일밖에 없는 방학이지만 그 동안 좀 달려볼까 생각 중이다.

5.

올해 목표는 블로그에 이런 저런 잡글이라도 좋으니 좀 더 글을 자주 포스팅하는 것이다. 누가 읽든 말든. 글쓰는 행위 자체는 현재 나로 하여금 '생각하게'하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skytary.egloos.com/tb/1611234 [도움말]

덧글

댓글 입력 영역